요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또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요. 그래서 제 책장에 꽂혀 있지만 아직 읽지 않았던 여행 에세이를 펴서 읽기 시작했어요. 책 제목부터 느낌 있는 <언젠가, 아마도>라는 책입니다. 김연수 작가님의 책이고 너무 재밌게 읽어서 제 인생 여행 에세이 중에 하나가 됐습니다. 오늘은 <언젠가, 아마도>를 읽고 남기는 간단한 후기를 전해 드릴게요. 우선 제게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메모했는데요. 이 내용들을 먼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행자라는 약한 존재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법을 익히게 됐다. -p.5
가장 순수한 여행의 경험은 그렇게 여행지에서 나와 같은 인간을 만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언젠가,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것. 그게 나의 여행이라는 것.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p.7
변하는 것만이 영원하다. -p.16
몽골에 갔을 때의 일이다. 게르에서 지내면서 내가 놀란 건 그들에게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생산한 것은 완벽하게 소비했다. -p.25
나중에 다시 와서 밤의 알람브라 궁전을 꼭 봐야지, 하는 초등학생 같은 다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여행에서 두 번 다시란 없으니까. 다시 왔을 때 나는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닐 테니까. (...) 밤의 알람브라가 내게 가르쳐준 것도 그런 것이었다.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여행을 통해 나는 비정함을 익혔다.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토록 찬탄하던 곳과 작별하는 법을 알게 됐으니까. 이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p.31
캄보디아의 한 스님이 쓴 책을 읽다가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를 설명하면서 '바를 정正'을 흔히 해석하듯이 '올바르게'나 '똑바르게'가 아니라 '능숙하게'로 해석하는 걸 보고 동감했다. (...) 이 관점에서 보자면, 20대란 뭘 해도 능숙하게 할 수 없고, 그래서 어떤 일에도 오래 매달리지 못하는 나이, 즉 서툴러서 쉬 싫증 내는 나이다. (...) 젊었을 때 많이 여행하라는 흔한 말을 뒤집으면, 여행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젊은이라는 말이 된다. 나이가 젊다면 당연히 육체적으로야 여행하기에 수월하겠지만, 여행은 체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 젊은이란 사실 실제적인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자 또는 젊은이'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너무 서툴러서 태연하게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는 자신을 감당해야 한다. -pp.38-39
한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지난 40년 동안 허리 사이즈가 4센티미터 이상 불었는데, 좌석 간격은 20년 전보다 10센티미터나 좁아졌다고 한다. 그러니 가면 갈수록 이코노미석에서 책을 읽는 일이 중노동으로 바뀌어간다. -p.71
자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더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책이 있는 게 아닐까? 원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이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p.75
당시 김정흠 교수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초등학교 5학년 학생도 대학교 1학년과 비슷한 수준의 교양을 갖추리라고 예언했는데, 틀린 말도 아니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종일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게임에 몰두하느라 대학교 1학년의 교양 수준이 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떨어진 것 같으니까.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인 셈이다. -p.113
일본어 표현 중에 '아메오토코', 즉 비를 부르는 남자라는 게 있다. 여행이나 야외 행사에 나서기만 하면 비가 내리는, 운 나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 "난 여자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말은 원래 '아메온나', 즉 '비를 부르는 여자'에서 파생된 단어니까. 여자자 쪽이 훨씬 더 강하게 비를 부르는 힘이 있다. 아메온나는 일본 요괴백과에도 실린, 아주 유명한 요괴다. -p.177
한국의 국경은 너무나 넓다. 휴전선이 아니라 바다를 말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둘 다 넘어가라는 '선'이 아니라 넘지 말라는 '면'이긴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국경을, 그것도 걸어서 넘어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차이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얼마나 제한하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생각이 깨진 건 몇 년 전 평택에서 중국 옌타이행 여객선을 탔을 때였다. 비행기가 아니라 배로도 출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니 바다가 국경이 아니라 뱃길로 다가왔다. -p.195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세계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훌륭한 여행자는 여행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 여행자로 남는 사람이다. -p.231
작가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여행과 마찬가지로 인생 역시 사진보다는 기억에 의존하는 게 더 좋다. (...) 포토샵이 사진의 노출을 보정하듯 기억은 과거에 관한 판단을 보정한다. 좋았던 시절은 더 또렷하게, 나빴던 시절은 더 흐릿하게 혹은 그 반대로. -p.235
책은 보통 3~4페이지 정도의 여러 단편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장소나 시간의 흐름이 있는 것 같진 않고 작가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순서를 구성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중국이 나왔다가 그 다음에 포르투갈 또 갑자기 한국. 이런 식으로 다양한 장소들이 혼재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어디로 갈지 궁금해지는 효과가 있었어요.
짧은 단편들로 구성돼 있지만 각 단편마다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들도 있어 공감되기도 하고, 작가님만의 독특한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담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과 떠올린 생각들에 부자연스러운 과장을 추가하지 않고 최대한 담백하게 풀어내려고 한 듯 보였어요.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고 종종 옅은 미소를 띠며 책을 읽었습니다. 또 다른 매력은 여행지에 얽힌 신선한 정보들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어요. 저 역시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대중적인 관광지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좋아하는 편인데 제가 몰랐던 신선한 정보들을 꽤 얻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 미래 여행을 계획하는 메모장에 틈틈이 적어두었습니다.
여행 에세이를 자주 읽는 편은 아니라 좋은 여행 에세이를 조금씩 찾아가는 중인데 이 책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책이었습니다.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는 한편, 이로 인해 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아이러니한 책이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신다면 <언젠가, 아마도>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읽으면 무조건 도움되는 <돈의 심리학> 독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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