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팬들에게 1월은 언제나 설레는 달이다. 연말 휴식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테니스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호주 오픈이다. 테니스는 매년 4개의 그랜드 슬램 대회가 열리는데 호주 오픈으로 언제나 문을 연다.
올해 호주 오픈은 2025년 1월 6일부터 1월 26일(예선 일정 포함)까지 진행된다. 지금 막 자정이 넘어서 1월 15일이 됐기에 본선 4일차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제 테니스 세계에 입문한 지 10년 정도 됐다. 테니스를 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하는 찐팬이라 오늘은 호주 오픈을 더 재밌게 보기 위한 관전 포인트를 다섯 가지 소개드리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복식이나 여자 경기는 잘 모르기 때문에 남자 단식 위주로만 관전 포인트를 잡았다. 그리고 객관적이라기 보단 굉장히 주관적인 관전 포인트다.
1. 조코비치&코치 머레이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조합이다. 머레이가 조코비치의 코치로 호주 오픈을 참가한다는 뉴스가 떴을 때 정말 소름돋았다. 처음 TV로 테니스 경기를 본 게 기억난다. 바로 2013년 호주 오픈 결승전이었다.
이땐 테니스에 대해 전혀 몰라서 룰을 찾아보며 경기를 봤었다. 그런데도 경기가 너무 재밌었다. 자연스럽게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내 최애 선수들이 됐고 이 경기에 감명 받아 내 첫 라켓으로는 당시 머레이가 쓰던 HEAD RADICAL을, 첫 테니스화는 조코비치가 신었던 아디다스 바리케이드를 구입했었다. 이 결승전에선 조코비치가 3-1로 머레이를 이기고 본인의 4번째 호주 오픈 우승(현재 호주 오픈 10회 우승)을 달성했다.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1987년생 동갑내기며 심지어 생일도 일주일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머레이가 작년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은퇴를 하기 전까지 두 선수는 현역 시절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다. 통산 전적은 25:11로 조코비치가 꽤 앞선다. 그럼에도 머레이와의 라이벌 관계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머레이가 커리어 후반부에 기나긴 부상을 안으며 기량이 떨어지긴 했지만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와 더불어 현대 테니스 BIG 4로 여겨진다. 머레이 역시 현역 시절 당연히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했었고, 그랜드 슬램은 총 3회(윔블던 2회, US오픈 1회) 우승했다. 게다가 올림픽에선 무려 단식으로 2번(2012 런던, 2016 리우)이나 금메달을 땄다. 다만 지금 열리는 호주 오픈과는 아픔이 많다. 왜냐면 여기서만 총 5번 준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 4번을 조코비치가 우승했다.
그래서 이번 호주 오픈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매번 결승에서 자신을 꺾은 조코비치의 코치로 멜버른을 찾은 머레이라니. 느낌이 어떨까. 보는 테니스팬들도 이렇게 흥분되는데 당사자들은 어떤 기분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조코비치 코치 박스에 있는 머레이를 볼 때면 정말 가슴이 벅차오른다.
조코비치는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이고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선수 중 하나다. 프로 테니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럼에도 조코비치는 올해 더 나은 선수로 발전하려고 하고 그 일환으로 머레이를 코치로 영입했다. 조코비치가 직접 머레이에게 전화해 코치 업무를 부탁했다고 한다. 조코비치 역시 머레이에 대한 존경심이 크고 특히 머레이의 강한 정신력을 본받고 싶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테니스 선수 중 조코비치가 가장 멘탈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더 강해지려나보다. 욕심쟁이.
너무 좋아하는 두 선수가 같은 팀으로서 참가한 이번 호주 오픈이라 조코비치의 성적이 너무 기대된다. 대회 기간 내내 두 전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조코비치의 11번째 호주 오픈 우승, 25회 그랜드 슬램 우승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바란다.
2. 즈베레프? 시너?
필자가 조코비치의 광팬이라 조코비치의 우승을 너무나도 바라지만 만약 100만원을 걸고 25년 호주 오픈 우승자를 택하라면, 나는 이 두 선수 중 고를 것 같다. 이번 대회 1번 시드는 시너, 2번 시드는 즈베레프다. 두 선수가 만난다면 그 무대는 결승일 것이다. 작년 호주 오픈 우승자인 시너는 단연 이번 대회 최고의 우승 후보다. 그리고 시너를 저지할 강력한 대항마는 즈베레프일 것 같다. 올해 27세인 즈베레프의 기량은 필자가 본 이후 최고의 상태라고 느껴진다. 아직 그랜드 슬램 타이틀이 없는 즈베레프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 챔피언이 될 수 있다. 현재 랭킹도 커리어 최고인 2위다. 본인의 강점인 백핸드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나름 약점?이라고 여겨진 포핸드도 훨씬 좋아졌다. 198cm 큰 키에서 나오는 서브는 항상 강력하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절정에 올랐고 프로 생활 경력도 오래된 만큼 멘탈도 단단해졌다. 준결승에서 알카라즈나 조코비치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벽을 넘는다면 정말 올해는 어느 때보다 우승 확률이 높다고 본다.
3. 우리 아직 죽지 않았다!
필자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또 있다. 바로 프랑스의 가엘 몽피스와 일본의 케이 니시코리다. 몽피스는 올해 38세(1986년생), 니시코리는 35세(1989년생)다. 2000년대생들이 주축인 오늘날의 프로 테니스 세계에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는 80년대생들이다. 특히 몽피스는 노장 중의 노장이다. 두 선수 모두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그들의 기량은 은퇴를 거부한다. 그리고 두 선수 모두 이번 호주 오픈 1라운드를 아주 멋지게 통과했다. 필자는 1라운드에서 가장 재밌었던 경기를 두 개 뽑자면 이 두 선수의 경기라고 생각한다.
우선 프랑스 신구 대결이 1라운드에서 펼쳐졌다. 몽피스와 페리카르의 대결이었다. 페리카르는 최근 무섭게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 203cm의 키에서 나오는 어마무시한 서브는 상대를 불문하고 강력한 무기다. 게다가 바브린카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원핸드 백핸드까지 구사한다. 솔직히 페리카르가 3:0으로 이길 거라 생각했다. 설령 몽피스가 노련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5세트까지 간다고 해도 당연히 5세트에선 한참 젊은 페리카르가 이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몽피스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5세트에서 페리카르를 잡았다. 정말 미친 경기였다. 86년생 선수가 3시간 46분 동안 펼쳐진 경기에서 21살의 생생한 선수를 이기다니. 몽피스는 아직 죽지 않았다. 심지어 이 프랑스 전설은 호주 오픈 직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ATP 250 ASB 클래식 오픈에서 우승했었다. 1977년 이후 최고령 ATP 단식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었다. 정말 존경스러운 일이다. 2라운드에선 독일의 다니엘 알트마이어를 만난다. 5세트의 피로를 극복하고 2라운드에서도 승리를 따낼 수 있을까?
1라운드의 또 다른 명경기는 니시코리와 몬테이로의 경기였다. 이 경기도 5세트 경기였고 또 89년생 노장이 5세트를 잡았다. 심지어 니시코리는 연달아 2세트를 내주며 쉽게 질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3세트를 7-5로 잡고 분위기가 완전히 역전됐다. 특유의 날카로운 스트로크가 살아나며 결국 5세트까지 따냈다. 필자가 가장 많이 보고 배우려고 하는 선수는 니시코리다. 같은 동양인에다가 신체적인 조건도 비슷하고 니시코리처럼 테니스를 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니시코리 영상을 정말 많이 봤다. 니시코리는 내 최고의 유튜브 테니스 스승이다. 니시코리는 2라운드에서 좀 강한 선수를 만난다. 미국의 토미 폴이다. 그러나 니시코리 스트로크가 잘 작동하면 문제 없을 것이다. 호주 오픈 2라운드에서 가장 기대되는 경기 역시 몽피스와 니시코리의 경기다.
4. 기대되는 차세대 스타
시너와 알카라즈가 차세대 BIG 2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때 루네까지 포함해서 차세대 BIG 3라고 했지만 루네는 시너・알카라즈와는 꽤 멀어졌다. 물론 여전히 어리고 훌륭한 선수기에 다시 강력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루네의 자리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스타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선 브라질의 주앙 폰세카가 있다. 2023년부터 사우디 제다에서 열리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ATP 파이널스는 차세대 스타를 가려내는 중요한 대회다. 2017년 한국의 정현이 초대 대회에서 우승을 해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현재 최고의 테니스 양대산맥인 시너와 알카라즈 모두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시너는 2019년, 알카라즈는 2021년 대회에서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직전 2024년 대회의 우승자가 바로 폰세카다.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페더러를 뽑는 이 선수 역시 육각형 선수의 느낌이 난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이미 높다. 별다른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 폰세카는 1라운드를 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왜냐면 1라운드부터 아주 강한 상대인 9번 시드 루블레프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자신이 차세대 스타라는 걸 대놓고 증명했다. 3-0으로 아주 깔끔하게 루블레프를 꺾은 것이다. 이로써 자신을 향한 세계의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2라운드에선 이탈리아의 소네고를 만난다. 루블레프라는 까다로운 상대를 3세트만에 제압했기 때문에 2라운드에서도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2023년 넥젠 파이널의 준우승자가 바로 프랑스의 아르튀르 피스다. 현재 랭킹 21위로 이미 투어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있다. 폰세카와 피스 모두 185cm의 준수한 키, 무결점의 플레이를 구사하는 선수들이다. 필자는 이번 대회에 주목해야 할 어린 선수로 피스를 뽑고 싶다. 1라운드에서 비르타넨을 만나 3-1로 이기고 올라왔다. 2라운드 상대는 같은 프랑스 국적의 알리스다. 피스가 무난히 이길 거로 예상한다. 폰세카는 2006년생으로 정말 정말 어리고, 피스도 2004년이라 못지않게 어린 편이다. 게다가 피스는 이미 3개의 투어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작년인 2024년 함부르크와 도쿄에서 ATP 500 대회를 우승했다. 그랜드 슬램에선 4라운드(24년 윔블던)가 최고 성적인데 올해 호주 오픈에선 어떤 결과를 보일지 기대된다.
5. 우리도 있다?
호주 오픈 10회 챔피언 조코비치, 디팬딩 챔피언 시너, 강력한 우승 후보 즈베레프, 차세대 스타 폰세카...
호주 오픈의 스포트라이트는 현재 이 네 선수에게 많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조용히 반등을 노리는 선수들이 있다. 5번 시드 메드베데프와 6번 시드 루드다. 최근 필자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메드베데프는 호주 오픈에서 3번(2021, 2022, 2024)이나 준우승한 강력한 선수다. 상대는 조코비치, 나달, 시너. 사실 져도 할 말 없는 상대들이었다. 메드베데프는 호주 오픈에서 꾸준히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약간 주춤한 성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진 못하다. 1라운드도 아주 힘겹게 5세트 경기를 하며 올라왔다. 그럼에도 메드베데프는 무시할 수 없는 좀비 같은 선수다. 8강까지 살아남는다면 이번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노르웨이 젠틀맨 루드가 있다. 메드베데프와 다르게 루드는 호주 오픈에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최고 성적이 21년 4라운드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그랜드 슬램에서 세 번이나 결승을 간 완성형 선수가 루드다. 클레이에서 더 뛰어난 선수인 건 맞지만 2022년 US오픈에서 준우승도 했을 만큼 하드 코트에서도 약하다고 할 수 없다. 사실 루드가 서글서글한 이미지에 매너가 너무 좋고 폭발적인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임에 틀림없다. 최고 랭킹 2위까지 간 적도 있고 현재도 6위라는 탑 클래스 위치에 있다. 루드는 언제나 우승 후보가 될 수 있지만 일단 2라운드부터 넘는 게 중요하다. 멘식이라는 강력한 선수가 기다리고 있다. 멘식 역시 어린 선수지만 그가 폭발하는 날에는 루드가 막기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루드의 승리를 기대한다.
이렇게 총 다섯 가지의 호주 오픈 관전 포인트를 잡아봤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고, 필자의 애정도에 철저히 기인하여 쓴 것이기에 재미로 봐 주시면 좋겠다. 마음으론 조코비치의 우승을 기대하고 머리론 시너의 우승을 예상한다. 올해는 누가 멜버른의 왕이 될까. 너무나 기대되는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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